서양역사에서 중세는 고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래 약 1천 년간 지속된 시기였다. 근대 서양인들은 근대정신의 출발점이 되는 르네상스 시대의 특징을 고대문명의 부활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고대와 르네상스 시대 사이의 기간을 두 시대의 중간시기라는 뜻으로 중세가로 불렀다. 이번 포스팅은 서양 중세사, 게르만족의 대이동 시리즈 1화이다.
중세사회의 형성
서양 고대의 역사가 주로 지중해세계를 무대로 이루어졌다면, 서양 중세 역사는 오늘날의 프랑스와 영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를 포괄하는 서유럽을 무대로 전개되었다. 즉, 고대 로마제국이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된 이후, 멸망한 서로마제국의 영토 내에서 형성된 세계가 바로 서양 중세사회였다.
서양 중세를 지탱한 중추적인 두 질서는 봉건제도와 기독교였다. 봉건제도가 중세인들의 세속의 인간관계와 생산활동에 관계된 질서였다면, 기독교는 중세인들의 공통적인 신앙으로서 그들의 생각과 생활태도를 지배하는 정신적인 질서였다.
그러나 이러한 질서가 중세 초기부터 안정된 모습으로 정착된 것은 아니었다. 중세 초기( 대략 5세기에서 10세기 중반 시기)는 무너진 로마제국의 폐허 속에서 로마인의 유산과 정복민인 게르만족의 문물이 화합하여 중세사회라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가는 일종의 모색 기였다.
게르만족의 원주지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남부와 독일 북부 해안지대였다. 그러나 기원전 1000년경부터 점차 남쪽과 동쪽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여 서기 3세기에는 다뉴브강 하류지역에까지 진출하였다. 한편 기원전 1세기 후반에는 이미 로마의 판도가 에스파냐, 갈리아, 그리고 브리타니아까지 뻗쳤는데, 이때부터 로마인과 게르만족은 라인강을 사이에 두고 인접해 지냈다.
게르만 사회의 모습
게르만족 사회의 구체적 실상을 전해 주는 사료는 카이사르의 갈리아전기와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 그리고 중세 유럽의 몇몇 무훈서사시들 뿐이다. 게르만족은 중부 유럽의 색슨족, 프랑크족, 알라민족과 동부 유럽의 롬바르드족, 반달족, 고트족 등 여러 일파로 나뉘어 살고 있었는데, 그 각각의 일파는 아직 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정부를 갖지 못했으며 부족들의 느슨한 연합체 단계에 머물러있었다. 부족의 지도자는 부족 내 자유민모임의 동의 하에 지도권을 행사했으며,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그 자유민모임이 의결권을 행사하였다. 아직 체계적인 국가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게르만족 사회에서 자유민, 즉 전사들을 결합시킨 사회조직은 종사제였다.
종사제란 군사지도자와 그를 다른 종사들 간에 이루어진 사적인 결합조직이었다. 종사는 전쟁에서 군사지도자를 도와 싸우고 그에게 충성을 바쳐야 할 의무를 졌으며 군사지도자는 종사들에게 무기, 식량, 의복 등을 제공하여 그들을 부양하고 또한 그들의 인신을 보호해야 했다. 게르만족의 경제생활은 목축 및 수렵생활 위주였으며, 토지의 공유관념이 남아 있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
게르만족은 인접한 로마제국의 안정된 선진문화와 풍요로운 경제의 혜택을 동경하여 로마의 국경을 빈번히 침입했다. 마침내 3세기에는 로마제국이 자체의 군사력만으로는 게르만족의 침입을 저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로마는 게르만족 용병을 이용하여 게르만족의 위협에 대처해야 할 상황에까지 몰렸다.
그리고 5세기에 들어 게르만족의 로마유입이 집단적인 민족의 대이동으로 바뀌게 되면서, 로마제국은 결정적으로 붕괴상태에 빠져들었다. 게르만족의 집단적인 대이동의 직접적 원인은 4세기 후반에 유럽의 남동부에 출현한 훈족의 공격이었다. 5세기 초에는 서고트족이 이탈리아반도에까지 진출하여 로마시가 약탈당했으며, 5세기 중엽에는 반달족과 훈족이 이탈리아반도를 침입하는 등 로마제국은 게르만족의 잇단 침입에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로마황제는 게르만족 장군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였고, 476년에 서로마제국이 멸망했다.
서로마제국의 옛 영토에는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집단적으로 이주한 게르만족들의 왕국이 5~6세기 동안 도처에 세워졌다. 반달족은 북아프리카에서 반달왕국, 서고트족은 갈리아와 에스파냐에서 서고트 왕국, 앵글로족과 색슨족은 브리타니아에서 앵글로-섹슨 7 왕국, 동고트족은 이탈리아에서 동고트왕국, 프랑크족은 갈리아에서 프랑크왕국을 각기 수립했다. 그런데 이 왕국들은 프랑크왕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단명에 그치거나 크게 성장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들 국가들의 거듭된 흥만과 혼란 속에서도 고대문명에 대신할 새로운 문명이 서서히 태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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