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유럽사로 들어오면서 중앙집권적 국민국가의 수립 및 이에 따른 왕권의 강화는 정치사상의 발전을 자극했다. 정치적 사유의 주체가 되었던 것은 당시 사회의 두 주요 집단을 이루면서 세력의 역학관계를 이루고 있던 귀족과 부르주아였다. 따라서 정치사상은 왕권의 강화에 대한 정당화와 견제를 동시에 내포하면서 발전되었다. 요컨대 주권론, 그리고 사회계약론을 수용했던 근대 자연법사상이 근대 서구사의 두 흐름을 이루게 된 것이다.
마키아밸리
▶︎ 주권론과 자연법의 이론 중 보다 먼저 발전한 것은 역시 전자 쪽이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발전과 상호경쟁은 정치사상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당대의 가장 뛰어난 정치사상가였던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The Prince. 1513)을 저술했는데, 인간의 실제 정치행위에 대한 관찰에 입각하여 권력의 획득 및 보존방법을 제시한 이 책은 큰 충격을 주었다.
마키아벨리는 근대국가의 본성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임을 간파하여, 기독교적인 윤리를 무시하고 고대적 정치전통에 귀의하였다. 곧, 정치행위를 인간본성에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하면서 시민적 덕(virtu)의 윤리를 설파했다. 국가를 강조했던 마키아벨리는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통치자의 존재와 건전한 시민정신에 기반한 공화정의 개념을 동시에 중요시하였다.
그리고 주권론, 국가이성의 개념. 공화주외적인 정치사상 및 애국심에 대한 그의 강조는 이후 유럽 정치사상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서구유럽사상의 전통에서 다소 고립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이탈리아반도의 협소한 도시국가라는 상황에 기반해 있는 그의 사상이 보다 광범위한 국민국가적 통합을 추구했던 북서유럽에 수용되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었다는 데에 기인한다 하겠다.
보댕
▶︎ 북유럽의 종교개혁은 세속의 통치자들을 교회의 개입으 로부터 완전히 해방시켰고 광범위한 사회대중을 동원했는데, 이는 재세례파 등의 원시적 공산주의로부터 신성한 왕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사유를 촉진했다. 1576년 보댕(Jean Bodin 1530-1596)은 국가론에서 군주의 절대주권을 옹호했다. 그는 종교적 분쟁으로 분열된 사회를 관용으로써 통합하고자 하여 주권의 개념을 설정하고 이를 군주에게 귀속시켰다.
홉스
▶︎ 그러나 절대주의 주권론의 완성자는 영국의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였다. 그는 청교도혁명기의 내란으로 혼란스러웠던 1651년에 리바이어던 (Leviathan)을 출판하여 사회통합을 위한 절대주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홉스는 자연 상태라는 가설적인 역사개념을 통하여 인간이 쾌락과 고통에 지배됨을 설파했다.
자연상태에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고독하고 가난하며, 더럽고 야수적이며 단명한 삶'이 영위되므로, 자연상태의 비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인간 온 계약으로 국가를 수립하고 모든 개인적 힘을 계약의 외곽에 있는 주권자 곧 절대군주에게 양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르주아 지식인
▶︎ 근대 초에 이르러 부르주아 지식인들은 중세 봉건귀족이 왕권을 제한하기 위하여 형성하였던 계약의 개념을 수용하면서 전통적인 자연법사상을 근대 자연법사상 곧 '자연권'(the satural rights)의 사상으로 발전시켰다. 자연법은 모든 존재의 창조자이며 운영자인 신이 공포한 것으로서, 모든 인습에 선행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자연의 규칙을 이루는 사물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또한 모든 인간은 이성으로 자연법을 포착할 수 있는 존재로, 따라서 자연상태도 합리적이며 자유롭게 교류가 이루어지는 상태로 파악되었다. 이러한 자연상태에 존재했던 합리적 자연법으로부터 파생된 인간의 자연권은 만인의 자발적인 동의에 입각한 사회계약, 곧 시민사회의 설립을 위한 기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국가는 단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에 불과하다는 입장이 표명되었다.
국가의 권위는 자연의 질서로부터 이성으로 연역된 만인의 불변의 권리. 곧 자연권에 합치될 때에만 정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봉건적 특권집단에 반대하여 전체 사회의 형평을 지향한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각국의 독립된 주권의 보장 및 그를 위한 국제법의 필요성을 추구했던 네덜란드의 그로티우스(Hugo Grotian 1583~1645), 독일의 푸젠도르프(Samuel Pufendorf, 1632~1694) 등으로 대표되는 대부분의 자연법 이론가들은 자의적인 왕권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궁극적으로 절대주의체제를 인정하고 있다.
반면 로크는 오히려 절대주의 체제의 타도에 적극 기여했다. 그의 '시민정부론'은 영국 스튜어트 왕조의 절대주의를 종식시켰던 1688년의 명예혁명을 방어하는 성격이 강한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는 '생명' '자유' '재산' 등 인민의 자연권을 보장해 주어야 하며, 인민은 자연권을 침해하는 정부에 대항하여 저항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
명예혁명과 시민정부론』의 출판 이후 영국의 정치는 안정되었고 더 이상 새로운 정치철학은 제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로크의 '개인의 자연권', '시민의 저항권' 등의 개념은 근대 민주주의사상의 토대를 이루었으며, 18세기 미국혁명과 계몽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의 정치이론
▶︎ 유럽대륙에서는 절대주의체제가 지속되는 가운데 공식적인 정치이론이 발전하지 못했다. 프랑스의 경우, 루이 14세 치세 말기 이후 혁명전야까지 파행과 이탈이 지속되면서 봉건제도 회 원리와 이해관계 및 기구 등이 온존했으며, 새로운 체제에 대한 전망이 억압되었다. 계몽사상의 합리주의적인 사고방식도 정치·사회분야에서는 확고한 일치를 이루지 못했다.
영국의 상원을 높이 평가했던 법복귀족출신의 몽테스키외 귀족에 의해서 왕권이 제한되는 입헌군주정의 수립을 추구했던 반면, 중산층 출신이었던 볼테르는 귀족세력의 요새가 되었던 고등법원에 대항해 왕권을 지지했다. 정치감각이 뒤떨어졌던 디드로는 왕과 귀족 사이의 분쟁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수시로 입장을 바꾸었다.
전반적으로 현실적이었던 계몽사상가들은 절대왕정의 오류를 명확히 파악했지만, 유럽의 군주들과 교류하면서 특혜를 누렸다. 그들의 날카로운 비판도 기존의 체제를 적당히 유지 시키는 선을 넘지는 않았다. 여기서 계몽전제주의의 이념 곧 개혁은 활발하고 개명된 주권자인 계몽전제군주(Enlightened Despot)에 의해서 가장 잘 실현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게 되었다.
계몽사상가들은 계몽전제군주를 지원했고, 유럽 각국에서는 정부조직의 합리화, 세금감면, 무역에 대한 부담 제거, 법률의 합리화 등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계몽전제군주는 계속 전쟁과 정복을 추구했고, 정치 및 교회권력의 남용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이 침묵될 수밖에 없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
▶︎ 프랑스의 무기력한 분위기 속에서도 장 자크 루소는 사회 계약론(Du Contrat Social, 1762)에서 탁월한 정치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인간의 자유로운 본성을 억압하는 문명의 악폐를 치열하게 공격했으며, 개인의 자유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그 도덕적 능력을 함양할 수 있는 사회를 모색했다. 여기서 그는 당시로서는 다소 낡아 버린 사회계약의 이념으로 복귀했다.
각 개인은 그의 권리와 힘을 그 자신이 부분을 이루는 공동체의 일반의지에 양도함으로써 평등한 정치적 참여를 기한다는 것이다. 개인은 자연적 자유를 공동체에 양도하지만 대신 시민적 자유를 제공받는다. 이상의 계약을 통하여 인간은 계약 이후에도 자연상태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유로우며, 또한 도덕적인 존재로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루소는 시민의 권리와 힘을 공동체의 권위에 일치시켰다. 루소는 절대주의체제의 테두리를 긍정하고 있던 자연법이론의 미비점을 비판하여 보다 혁명적인 전망을 제시하고 새로운 사회를 위한 대안을 제공했다. 이는 루소의 이론이 이후 프랑스혁명을 급진화시키는 데 주요한 추진력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드러났다.
종교개혁의 배경과 역사적 의의 및 프로테스탄티즘과 가톨릭의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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