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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유용한 정보

언제부터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는 것이 욕이 되었을까요?

by 곤솔이 2023. 1. 4.

예술 작품 속에는 수많은 손가락이 있습니다. 창조하는 손가락, 지적하는 손가락, 의심하는 손가락 등 이렇게 다양한 손가락들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손가락은 가운뎃손가락일 것입니다. 다들 무슨 의미인지 아시죠? 그런데 언제부터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는 것이 욕이 되었을까요?

 

 

 

고대 그리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가운뎃손가락은 동성애를 의미했습니다. 쭉 뻗은 가운뎃손가락이 남성의 중요부위를 의미했는데, 이와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일화는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이야기인데요. 누군가 디오게네스에게 데모스테네스가 어디 있냐고 하자 디오게네스는 가운뎃손가락을 가리켜 데모스테네스가 있는 곳을 가리켰습니다. 데모스테네스의 위치뿐만 아니라 성적 취향까지 암시한 것이죠. 물론 여기 엄청난 모욕의 의미는 없었습니다. 그리스인들에게 동성애는 그저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위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대 로마


가운뎃손가락이 본격적으로 모욕의 의미를 갖게 된 건 고대 로마 시대로 추정이 되는데요. 로마의 3대 황제의 칼리굴라의 신하 중에는 호민관이었던 카시우스가 있었습니다. 그는 동성애자였는데요. 칼리굴라는 카시우스가 예법에 따라 그의 손에 입맞춤을 하려고 할 때마다 가운뎃손가락을 쭉 펴 보이며 그를 조롱했다고 합니다. 이후로 가운뎃손가락을 쭉 펴 보이는 건 점점 성적인 모욕의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100년 전쟁

 

15세기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일어난 100년 전 전쟁인데요. 당시 영국군의 주력은 궁수였습니다. 영국군 궁수가 쏜 화살은 중무장한 기사의 갑옷도 뚫을 정도로 강력했죠. 때문에 전쟁 초기, 영국이 프랑스를 압도했던 때에는 궁수의 역할이 꽤 컸습니다. 그래서 당시 프랑스군은 영국군 공수를 포로로 잡게 되면 다시는 화살을 못 쏘도록 손가락을 잘랐다고 합니다. 영국군 병사들은 프랑스 군의 만행에 치를 떨었으며, 이후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게 되면 손동에 바깥으로 한 채 검지와 중지로 V자를 그려 상대방을 조롱하곤 했죠. 이 제스처는 '내 손가락이 잘리지 않았다' 즉, 승리했다는 의미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승리의 의미인 V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영국에서는 여전히 모욕의 의미로 더 강한 제스처입니다. 그리고 이 부위에서 검지를 내리면 우리가 잘 아는 가운뎃손가락을 올린 모양이 되는데요. 역시 내 손가락이 잘리지 않았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16세기 종교개혁이 한창 진행되면서 교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예술작품 등에서 가운뎃손가락이 교회에 대한 비판적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개신교를 지지하던 예술가들은 당시 그림 속에 이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는 여러 성화들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이때 시작된 종교개혁의 물결은 거셌지만, 17세기의 여러 유럽 국가들은 종교 개혁으로 탄생한 개신교 세력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서 새로운 개신교 사회를 세웠고 그게 오는 날에 미국이 되었죠. 

 

 

 

미국사회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꾸준히 늘어 19세기 말에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면서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는 문화도 미국 사회에 서서히 스며들었죠.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는 포즈를 취한 최초의 사진이 당시에 찍혔는데요. 그 사진을 보면 어떤 남자가 앞사람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면서 왼손으로 슬쩍 가운데 손가락을 쭉 펴 보이는 포즈였습니다. 명백한 오늘날의 모욕적 의미였죠. 이후 가운데 손가락 욕설은 할리우드 영화나 TV 같은 미국의 대중 매체를 통해 반복 노출되었고,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욕이 되었습니다.

 

마치면서


모욕과 위협이기도 했고, 조롱이었으며 사회 부조리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던 가운뎃손가락 욕설은 이처럼 오랜 역사가 숨어 있었는데요.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함부로 이 욕을 날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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